알콤부화기 부문 우수상 (우림님) > 당선작

본문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

이벤트

특별한 이벤트와 다양한 서비스를 소개합니다

당선작
알콤부화기 부문 우수상 (우림님) (1)
등록일
2011.06.15 00:00
조회수
78,564

본문

알콤 FESTIVAL

알콤 부화 체험 [체험기]                                               - 부산 대연동 우림 -



저는 외동이어서, 어렸을 적부터 사교성과는 담쌓은 아이였어요. 가난한 형편 때문에 유치원도 못 다녔고, 엄마랑 놀다가 초등학교를 들어가게 되었어요. 부끄럼 많고 소심했던 저는 주위에 친구들이 별로 없었습니다. 저 스스로도 친구들과 있는 것 보단 혼자 있는 걸 더 좋아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책을 읽거나 엄마와 집 밖 텃밭을 가꾸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이렇게 저렇게 지냈는데, 고학년이 되니까 상황이 많이 바뀌더라고요. 저는 무안하거나, 제가 대처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더듬거리거나 피하거나, 책을 읽거나 했는데, 그게 제 친구들 눈에는 마음에 안 들었던 것 같습니다. 같은 반 여자 아이가 왕따를 시키는데, 참 어렵더라고요. 그때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주위 모두가 사춘기를 겪고 있었을 때라, 다들 그 여자 아이편만 들어주었습니다.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안되겠단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때 용기를 내서 담임선생님께 찾아갔는데, 그 뒤로 상황은 더 어려워졌습니다. 담임선생님께서 반 아이들 모두 있는 앞에서 절 왕따시키지 말라고 하셨거든요. 그 뒤로 몇 번은 더 담임선생님을 찾아갔지만, 나중엔 ‘내년엔 다른 반이 될 테니 1년만 참아라.’ 는 답만 들었습니다. 결국 꾹 참으면서 1년이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웬걸. 다음해에 저는 또 그 아이와 같은 반이 되었습니다. 강도는 조금 더 세졌습니다. 선생님께 드린 같은 상담, 선생님께 받은 같은 답. 참고, 또 참았습니다. 엄마에게 말도 못하고, 아니,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엄마 마음이 아플까봐, 그러면 제 마음이 더 아프니까 그냥 두었는데, 어느 날 결국 엄마가 알아버렸습니다. 같은 반 남자 애가 던진 의자에 맞아서 제가 병원에 가게 되었거든요.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 상황을 벗어날 방법이 없었습니다. 엄마도 울고 저도 울고........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여느 해와 같이 그 해에도 체육대회가 열렸습니다. 저야 체육은 젬병이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별로였기 때문에, 구석에 있다가 집으로 가려고 학교 정문으로 나가는데, 그 곳에서 어떤 할머니가 병아리를 팔고 계셨어요. 우울한 하루였는데, 귀여운 병아리들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었어요. 그 때 할머니는 병아리 한 마리에 300원씩 파셨는데, 저는 돈이 없어서 그냥 계속 옆에서 구경만 하고 있었어요. 병아리 처음 본 것도 아닌데, 굉장히 오랫동안 보고 있었던 기억이 나요. [삐약삐약] 너무 조그마해서, 너무 약해보여서, 너무 불쌍해보여서, 계속 보고 있었는데, 할머니께서

“그 우유주면 내가 병아리 2마리 주마.”

하시는 거예요. 제가 손에 급식으로 받은 우유를 들고 있다가 냉큼 드렸습니다.

“뭐든지, 혼자 냅두면 안되는겨, 죽이지 말고 잘 키워!”

“감사합니다!”

하고 병아리 2마리를 받아서 가다가 궁금한 게 있어서 다시 할머니께로 갔습니다.

“할머니, 얘들도 저 엄만 줄 알고 따라와요?”

“아녀! 다 큰 거라 소용없어. 알에서 나올 때부터 봐야 혀.”  

조금 실망했지만, 내가 잘 키우면 날 따라와줄꺼야, 하는 마음으로 집으로 갔습니다.

집에 가니 엄마는 깜짝 놀라시면서, 이런 건 금방 죽는다고 하시면서, 다시 돌려주고 오라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그냥 조용히 서있자, 엄마는 한숨을 내쉬곤 ‘살려보자!’하셨습니다.

병아리 살리기 대작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일단 엄마는 실내 온도를 30로 올리셨습니다.

박스에다 수건, 물통, 먹이통을 넣고, 병아리를 넣고, 하루 동안은 절대로 만지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 날 저녁은 병아리들이 혹시 죽으면 어쩌나, 밤을 꼬박 새었습니다. 다행이 병아리들은 살아서 무럭무럭 자라나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병아리여서 화장실에서 키웠는데, 점점 자라서 집 앞 마당으로 이사를 해주었습니다. 마당에서 지렁이도 잡아먹고, 언제까지나 제 곁에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지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며칠 뒤,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죽어있고, 다른 한 마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우정아!, 사랑아!”

울고불고 난리가 아니었습니다. 범인은 도둑고양이로 밝혀졌지만, 진정이 안됐습니다.

병아리들이 절 따라다니기 시작한지 겨우 3일도 채 안됐었으니까요.  

이런 저런 일들이 지나고 저는 중학생이 되었습니다. 또, 그 여자 아이와 같은 반이 되었습니다. 워낙에 촌인데다, 중학교도 여중 한 개 뿐이니 그럴 수도 있다. 넘겨보려 했지만, 점점 몸도, 마음도 지쳐갔습니다. 중학생이 되니 육체적으로 괴롭히지는 않는데,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과포화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혼자 밥 먹기 싫어서 점심도 굶고 독서실에 있는 내 모습을 볼 때마다, 모두 둘, 셋씩 짝지어 하교하는데, 혼자 하교하는 내 모습을 볼 때마다, 그냥 끝내고 싶다. 리셋 해버리고 싶다는 생각만 하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없었더라면, 전 정말 버티지 못했을 겁니다.

고등학교 입학원서를 쓰는데, 또 마을에 하나 밖에 없는, 고등학교를 가려고 생각하니, 고민이 되었습니다. 결국 성적이 나쁜 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저는 대안 학교를 선택했습니다.

세상 교육방식과는 다른 사람의 인성을 만들어 주는 대안 학교, 저는 2009년 링컨하우스 부산스쿨에 입학하였습니다.

저는 대안학교는 뭔가 다를 거라는 기대가 컸는데, 1학년 초기여서 그런지 일반 학교와 다를 바 없고, 친구들의 모습에서 오히려 더 나쁜 모습을 보면서, 마음에 갈피를 잡지 못했습니다. 모두 하나 둘, 짝을 짓는데, 저는 이곳에서도 혼자였습니다. 게다가 집에서 너무 먼 고등학교를 오는 바람에 엄마께 기대기도 힘들어서 인터넷만 보다가 우연찮게 알콤 사이트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에도 자주 들어갔던 사이트지만, 그때는 돈이 없어서 보기만 했는데, 멀리 고등학교를 오다보니 수중에 조금이나마 돈이 있어서 저는 큰 마음을 먹고 알콤을 구매했습니다. [알콤 미니 고급형 핑크색.] 아직도 알콤을 산 날을 잊을 수가 없어요. 저희 학교는 학생 전원이 기숙사 생활을 하기 때문에 거의 007작전에 가까운 모션 끝에 제 손에 알콤 미니 고급형 부화기가 들어왔습니다. 알은 뭐로 할까 하다가, 엄마를 잘 따른다는 오리로 결정했습니다. 오리알 3개. 모든 건 제게 있었습니다. 그 때의 벅찬 마음을 아직도 잊을 수 없네요.

그런데 아뿔싸! 제 침대 쪽에는 코드를 꼽는 곳이 없다는 걸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착해 보이는 한 친구에게 사정사정해서 친구 침대에다가 몰래, 알콤 부화기를 가동시켰습니다.  

<2009.3.18 수요일 오리알 입란>

두근두근! 솔직히 처음 몇주는 감이 안왔는데, D-day 14일, 4월 1일이 되니 매일 매일 심장이 두근두근! 혹시나 내가 보지 못하는 사이에 알이 깰까봐 귀찮다는 친구의 투정에도 매일매일 오리알 앞에서 서성였습니다. 생각해보면 그 당시 친구의 투정이 이유가 없었던 건 아닙니다. 안그래도 예민한 친구는 밤마다 알들이 돌아가는 소리에 깜짝깜짝 놀라서 깼었다고 하니, 미안하기도 하고 고마운 마음입니다.

처음에는 저와 도움을 준 친구 딱 둘만 알았는데, 부화할 때가 점점 다가오자 하나, 둘 주위 친구들이 제가 오리알을 부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귀엽겠다며 좋은 말을 해주는 친구도 있었지만, 알레르기가 있다느니, 냄새가 고약할꺼라느니, 속상한 말을 하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알 속에서 잘 자라고 있을 오리들을 생각하며 꾹 참고 절대 코드를 뽑지 않았습니다. 선생님들까지 아시면 혼날 걸 알았기 때문에 조심, 또 조심을 하는데, 알들이 태어나기 D-day 4일, 밥을 먹는데 한 친구가 말을 꺼냈습니다.

“야, 나도 오리 디게 좋아해 ㅎㅎ 그래서 말인데, 오리들 이름 뭐로 할 거야? 뭐, 오리1, 오리2, 오리3 그렇게 부르진 않을 거지.?“

워낙 긴장하고 있었던 터라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홍삼, 인삼, 산삼 어때? 오래오래 건강하라고^^ 어쨌든 난 니 편!”

홍삼, 인삼, 산삼이라……. 더 생각할 것도 없이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D-day 3일! 그런데 이게 무슨 일입니까? 여기서 소리 지르고 저기서 소리 지르고, 새벽 5시 30분 기상인 저희 학교에서 새벽에 그렇게 소란스러웠던 적은 전에도 없고 후에도 없었습니다.

<2009.4.13.월요일> D-day 3일인데 뭐가 그렇게 급한지 맏이인, 홍삼이가 태어났습니다.

내가 얼굴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냄새가 날거라느니, 털이 날릴거라느니 했던 친구들이 모두 알콤에 달라붙어서 보여줄 수가 없없습니다.

“귀여워, 어떻게!!!”

그런데도 기분은 하늘을 날아갈 것만 같았습니다. 하루 종일 저희 학교에선 제 오리로 후끈 했습니다. 존재감 없던 제가 갑자기 스타가 되어버렸어요. 고등학생이 오리라,,,, 지금 생각해보면 외로워서 했던 건데 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어버렸네요.

<2009.4.14.화요일> 이번만큼은 꼭 부화하는 걸 보고 말리라! 저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여학생들이 밤을 새기로 마음먹고 알콤 주변에 앉아서 과자를 한보따리씩 사서 수다를 떨었습니다. 그 때 처음으로, 친구란 게 좋구나……. 생각했던 것 같아요. 새벽 1시, 2시, 밤을 새기로 모두 굳은 각오를 했건만, 고된 일정 속에 그건 무리였었나봐요.

[삐약삐약]

인삼이의 우는 소리에 우리가 일어났을 땐, 이미 상황 종료. 예쁜 인삼이가 홍삼이와 함께 신나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친구들은 귀여워서 어쩔 줄 모르고 꺼내보려 했지만, 아직 산삼이가 남았기에 절대 열지 못하게 제가 막았습니다. 그날도 홍삼이와 인삼이 이야기로 학교는 시끌시끌했습니다. 이 난장판에 선생님들이 모르고 넘어가실 리가 없죠. 선생님들이 모두 저를 ‘어이구,쯧쯧’ 기가 막히단 표정으로 절 보셨습니다. 그리곤, 교직 생활 내내 저 같은 학생은 없었다면서, 웃으셨습니다. 결국 그날 저는 교장실에 호출되었습니다.

‘어쩌지? 혼나는 거 아니야? 갔다 버리라고 하면 어쩌지?’

이것저것 머리는 복잡한데, 어느새 저는 교장선생님 앞에 서있었습니다.

“우림이, 생명은 소중한거야. 책임이 있어야 해. 나는 네가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그 말 뿐이셨습니다. [책임감] 익숙하지만, 생소한 단어. 저는 그저 혼나지 않았단 사실에 기뻐했습니다.

<2009.4.15.수요일> 이 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홍삼이, 인삼이 모두 새벽에 하루차이로 깨어났기 때문에 당연히 산삼이도 새벽에 깨어날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아침을 먹고 오전 수업을 듣고 점심을 먹을 때까지도 산삼이는 깨어나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은 내일 태어나는 거 아니냐면서 걱정 말라고 했지만, 부화되지 못하고 알 속에서 죽기도 한다는 말을 들었던 저는 속이 탔습니다. 오후 수업을 들을 때쯤 한 친구가 제게 산삼이 알에서 삐약삐약하는 소리가 들린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수업 시간이 끝나고, 선생님들까지 모두 산삼이를 기다리는데 산삼이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삐약거리는 소리는 계속 들렸습니다. 6시, 7시, 8시 모두가 초조하게 기다리는데 산삼이는 삐약거리기만 하고 나오진 않았습니다. 그 때 보고 계시던 한 선생님께서

“아무래도 안 되겠다. 인공 파각을 해야겠다.”

하셨습니다. [인공 파각]! 그거 잘못하면 죽기도 한다는데, 저는 원망스러운 눈으로 선생님을 바라봤습니다. 내 산삼인데!

“따뜻한 물하고 수건, 아! 스탠드 가져와!”

모든 친구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데 저는 혼란스러웠습니다.

“선생님, 알에서 깨어날 때까지 스스로 깨도록 기다려야 한데요.”

“네가 몰라서 그래. 선생님도 병아리 다 키워봤어. 저렇게 두면 오히려 힘빠져서 죽을 수도 있어.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나서 그래. 우림이, 선생님 믿을 수 있지?.”

산삼이가 죽으면 안되니까.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드디어, 알콤 뚜껑을 벗었습니다.

먼저 태어난, 홍삼이와 인삼이가 춥지 않게 스탠드를 키고 선생님이 알을 들었습니다. 세상에! 밑쪽으로 이미 알이 까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밑에는 딱딱한 기계뿐이니 더 이상 깰 수 없어 힘만 빼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미리 알았더라면 알을 돌려줬을텐데...! 후회가 몰려왔지만, 선생님은 곧 알을 조금씩 깨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너무 지난 터라 안쪽 막이 하얗게 굳어서 산삼이가 아파하는게 눈에 보였습니다. 선생님은 차분하게 뜨거운 물을 묻혀가면서 조심 조심 알을 떼어냈습니다. 모두가 숨을 죽이며 그 장면을 지켜보았습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됐다! 살았구나!”

“와----”

모두가 손뼉을 치고, 심지어 우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홍삼이란, 인삼이는 검은데, 산삼이는 노랗네! 이야~ 산삼이는 힘들게 나와서 그런지 더 예쁘구나”

모두가 산삼이를 보며, 기뻐했던 그 순간. 저는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였습니다.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습니다.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며칠 뒤, 홍삼이 인삼이 산삼이를 알콤에서 꺼내고 박스로 옮겨야 하는데, 어디로 이사를 해야 할지 몰라서 고민을 하고 있자, 친구들이 복도로 이사하는 게 어떻냐고 제안했습니다. 저야, 너무 기뻤습니다. 기숙사 밖 복도니 제가 돌볼 수 있었으니까요. 하루하루, 저는 정말 행복했습니다. 그 전에는 아침에 눈 뜨는 게 귀찮고 또 똑같은 일상이 반복된다고 생각하니 짜증나고 그랬는데, 삼이들이 태어나고 나선 아침에 절로 눈이 떠졌습니다. 매일 밥 주고, 밑에 신문지 갈아주고, 사소한 거지만 삼이들이 조금씩 자라는걸 보니 너무 재밌고 기뻤습니다. 2주 후가 중간고사라 걱정이 되긴 했지만, 교장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책임감]을 그 때 즈음 깨닫고 있었기 때문에 꿋꿋이 생활했습니다. 삼이들 밥 주는 것도 따로 오리밥을 사지 않았기 때문에 지하 식당에서 남은 반찬이나 밥을 우유에 말아서 주어야 했고, 신문지도 이곳 저곳에서 구해야 하느라 공부할 시간이 없자, 저는 생전 처음 밤을 새서 공부를 했습니다. 화장실, 악기실, 삼이들 덕분에 친해진 친구 몇 명과 숨어서 하는 공부는 진짜. 재밌었습니다.

드.디.어 중간고사 두구두구두구두구! 떨리는 마음으로 친 중간고사 결과는! 삼이들이 가져와준 행운인 걸까요? [1등] 성적표를 받고 제일 먼저 삼이들에게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링컨 친구들과 삼이들과 정말 많은 추억이 있었습니다. 너무 답답할까봐 점심때 삼이들과 꼭꼭 학교 운동장으로 운동을 나갔는데, 그 때를 노린 남학생들 때문에 저는 늘 삼이들이 남학생들 사이에 있는 모습을 봐야 했습니다. 그래도 제가 손뼉을 치거나 이름을 부르면 곧잘 제게 오곤 했으니, 친구들의 부러움은 말로 못할 정도였죠.

가슴이 철렁했던 적도 많았습니다. 남학생들이 삼이들이 천둥오리니 날게 해야 한다면서 높은데서 떨어뜨렸을 땐, 어찌나 밉던지. 오리는 물을 좋아한다면서 여학생들이 화장실 세면대에 물을 받아놓고 삼이들을 넣었을 땐, 제일 먼저 달려가 따뜻한 물인지 확인했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제게 ‘오리엄마’란 별명이 붙었습니다. 싫은 척 했지만, 싫지 않았습니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쯤 되었을까요? 어렸을 적엔 잘 안자라는 것 같아서 걱정이었는데, 어느 새 삼이들은 몰라볼 정도로 커졌습니다. 박스를 4번 정도 바꾼 것 같네요. 조금 더 크게, 크게. 결국 학교 뒤뜰로 삼이들이 이사했습니다. 이사 한 지 며칠 뒤, 여느 때와 같이 밥을 주러 갔는데,  산삼이는 사라지고 인삼이는 꼬리를 다친 모습이었습니다.

-패닉- 울고 불고, 그 전에 남학생들이 데리고 놀았다는 말을 듣자마자 화가 나서 그 남학생한테 따졌지만, 남학생은 분명 잘 데리고 놀았고, 다 데리고 논 뒤에는 박스에 잘 넣어서 벽돌까지 올려놨다고 했습니다. 저는 울면서 계속 찾아봤지만, 사라진 산삼이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선생님들은 급히 홍삼이와 인삼이를 세탁실로 옮기로 치료해주셨습니다. 제일 힘들게 태어나서 제일 마음 썼던 산삼이였던 지라, 마음을 잡지 못하고 있는데 교장선생님께서 절 부르셨습니다.

“우림아. 지금까지 내가 말한 책임감을 잊지 않고 지켜줘서 고맙구나. 그런데 내가 보기엔 아직 우림이가 책임감을 가지기엔 어린 것 같아요. 생명에 대한 책임감은 보통 장난감에 대한 책임감과는 달라서 조금만 실수해도 큰 상처가 생길 수 있단다. 선생님들 말로는 도둑고양이가 그런 것 같다는데, 교장선생님은 우림이가 오리들을 도둑고양이한테서 지켜낼만한 책임감은 없는 것 같아 보이는구나. 오리들은 네게 많은 선물을 준 걸로 아는데, 너는 어떠니? 오리들에게 진정한 선물은 뭘까? 생각해보고 다시 오렴”

속상했지만, 교장선생님 말씀이 틀린 게 없었습니다. 오리들에게 진정한 선물. 저는 오리들을 지켜줄 자신이 없었습니다. 제가 계속 지켜주려고 했다간, 홍삼이와 인삼이가 어렸을 적 병아리처럼, 산삼이처럼 될 것을 알았으니까요.

며칠 뒤 저는 홍삼이와 인삼이를 데리고 가까운 유엔 공원을 갔습니다. 선생님께서 제게 유엔 공원에 홍삼이와 인삼이를 맡기는 게 어떨지 제안하셨기 때문입니다. 유엔 공원에서는 청둥오리들을 기르고 있고 큰 청둥오리들이 많아서 어린 홍삼이와 인삼이를 보호해 줄 거고, 무엇보다 가까우니 보고 싶을 때마다 볼 수 있었습니다. 너무 좋은 조건이었기 때문에 저는 무겁지 않은 발걸음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관리 아저씨는 제가 홍삼이와 인삼이를 유엔 공원에 기부하는 걸로 처리되었다고 하시며 잘 돌보아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홍삼, 인삼, 산삼. 제게 정말 많은 것을 준 제 소중한 친구들입니다. 우리 삼이들 덕분에 솔직하게 링컨 친구들한테 왕따 당했던 과거를 이야기 할 수 있었고, 마음으로 연결된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으며 차츰 제 자신에 대한 자신감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게 알콤이 없었다면 과연 가능했었을까요?  2년이 지난 지금, 고3이지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준 알콤이야기를 숨길 수 없어 참여했습니다.    

    



  - 당선 작품의 저작권ㆍ사용 및 홍보 등에 대한 일체의 권리는 (주)오토일렉스에 있음 -





댓글목록

김학성님의 댓글

김학성 작성일

  한참동안 읽었네요.
삼이들을 통해 친구, 자신감, 책임감, 짅ㅇ한 선물 등에 대해 아셨군요.
이제는 학생의 본분을 잘 감당하길 바래요...^^*